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독서 기간 : 23.12.25 ~ 12.31
나의 한 줄 리뷰 : 식물에대한 여러 사실들과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하는 훌륭한 책.
하이라이트
1. 모든 것은 ‘후추’ 때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후추를 향한 인간의 ‘검은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2.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처벌할 근거가 없었으나 민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성난 민중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끔찍한 사형기구 기요틴으로 공개 처형했다. 시민이 굶주리지 않도록 감자빵을 장려하고 제빵학교까지 후원한 앙투아네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을 그린 만화다. 이 만화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궁전에 핀 고고한 장미 한 송이에 비유한다. 왕비가 특별히 사랑한 꽃은 만화 제목에 들어 있는 장미가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그녀가 사랑한 꽃은 감자꽃이었다.
3. 감자 싹과 초록색으로 변한 부분에 독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구워 먹고 쪄 먹는 노란색 부분에는 독이 없지만 감자 싹이나 초록색으로 변한 부분에는 솔라닌(Solanine)이라는 이름의 독성분이 들어 있다. 솔라닌은 현기증이 나게 하고 구토를 유발하는 등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놀랍게도 치사량은 겨우 400밀리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도 양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 독성 식물인 셈이다.
4. 감자 재배로 사람들이 배를 곯지 않고 안정적으로 식량을 얻게 되자 유럽 각국에서는 인구가 많이 증가했다. 인구 증가는 노동력 향상으로 이어졌고 그 노동력이 이후 산업혁명과 공업화를 뒷받침해주었다. 유럽은 목축문화권이지만 고기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여유가 없었다. 말은 마차에 매여 사람과 짐을 날라야 했고 소는 쟁기를 메고 밭을 갈거나 다른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사람들은 우유를 얻기 위해서라도 함부로 소를 도축할 수 없었다. 아시아가 원산지인 목화가 전해지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옷을 만드는 데 털가죽이 필요해 마구잡이로 양을 도축하는 바람에 고기로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감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비로소 유럽에서 육식이 가능해졌다.
5. 먹을 것이 없어 아일랜드 사람들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는 동안 영국은 팔짱 낀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냉담하고도 무심하게 대응했다. 당시 영국은 아일랜드를 같은 나라라기보다는 속국으로 간주했다. 영국의 그런 태도를 목격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 정부와 시민들에 강한 불신감을 품었고 이는 훗날 아일랜드 독립으로 이어졌다.
6. 카레라이스를 세계 최초로 만든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인도’라고 답했다면 미안하지만 땡! ‘카레’ 하면 누구나 머릿속에 인도를 떠올리지만 사실 카레라이스를 맨 처음 만든 나라는 영국이다. 카레는 무슨 의미일까? ‘채소와 고기 등의 건더기’를 의미하는 카밀어 카리(Kari)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밖에 ‘밥에 얹어 먹는 소스’를 뜻한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향신료를 활용한 요리를 통틀어 ‘카리’라고 불렀다. 영국인들은 인도산 쌀로 지은 밥에 향신료를 버무려 만든 마살라를 얹어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7. 토마토의 운명은 감자와는 또 달랐다. 이 작물은 유럽에 전해진 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유럽인들은 18세기에 들어서야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16세기에 전해져 무려 200여 년간이나 식용작물로 인정받지 못한 셈이었다.
8. 우리는 ‘사과’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붉은색을 떠올린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사과는 새빨간 색을 띠지 않는다. 아니, 빨간색이라기보다는 자주색에 좀 더 가깝다. 사과는 보라색 안토시아닌과 주황색 카로틴이라는 두 가지 색소를 교묘하게 조합해 빨간색을 만들어낸다. 반면 토마토는 실제로 새빨갛다. 토마토는 왜 이렇게 새빨간 색을 띨까? 이는 토마토에 들어 있는 리코펜(Lycopene)이라는 빨간색 색소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남미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토마토를 보기 전까지 제대로 새빨간 과일을 본 적이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유럽인들이 자신이 처음 보는 그 선명한 붉은색 과일에 독이 들어 있으리라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9. 사실 케첩은 이때 처음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었다.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대 중국에서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Kê-Chiap(어장魚醬)에 가 닿는다. 생선 소스 혹은 생선 액젓으로 볼 수 있는 ‘어장’이 동남아시아로 전해지면서 케첩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케첩 맛을 본 유럽인은 다양한 어패류와 버섯, 과일을 활용해 케첩 맛을 재현했고 그렇게 만든 조미료를 케첩이라고 불렀다.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라는 속담대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음식 재료가 한정적인 신대륙에서 케첩을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토마토였고 결국 토마토케첩이 탄생하게 되었다.
10. 과일과 채소의 차이는 무엇일까? 간단히 정의하자면 열매를 먹는 식물을 과일, 열매 이외의 부위를 먹는 식물을 채소라고 할 수 있다. 식물학적으로 과일이란 식물의 열매를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토마토는 열매이므로 과일에 속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일이라는 단어를 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서도 사용한다. 다시 말해 디저트용으로 직접 먹으면 과일이고 요리재료로 일정한 조리 단계를 거쳐서 섭취하면 채소다. 어차피 과일과 채소의 분류는 자연계가 아닌 인간이 임의로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토마토는 과일인 동시에 채소로 보아도 무방하다.
11. 토마토가 채소인지 과일인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나라마다 이 두 작물을 제각각 다르게 구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인은 토마토뿐 아니라 과일로 먹을 수 있는 딸기와 멜론도 나무에 열리는 열매가 아니라 초본 속 식물이므로 채소로 분류한다. 반면 한국인은 일반 토마토와 방울토마토를 모두 과채류(果菜類)로 규정한다.
12. 후추는 고기를 오래 보존하는 데 필요했으나 단지 이 용도 때문에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사치스러운 식생활을 즐긴 귀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가축의 먹이만 충분히 확보해두면 굳이 가축을 미리 도축해 보관해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이나 상류층에서 후추의 인기가 치솟고 그에 따라 엄청난 가격이 형성된 데는 사실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자신의 높은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목적이 더 크게 작용했다.
13. ‘왜 유럽인이 절실히 필요로 하고 열광하는 향신료가 유럽이 아닌 인도에서 주로 생산되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향신료가 가진 생태적 특성에서 찾아야 한다. 향신료의 향미 성분은 본래 식물이 병원균과 해충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축적하는 물질이다. 잘 알려진 대로 기온이 높은 아열대 지역과 습도가 높은 몬순 기후의 아시아에는 병원균과 해충이 많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향미 성분 등을 갖춰 스스로 자기 몸을 지켜야 했다. 반면 기후가 서늘한 편인 유럽은 상대적으로 병충해가 적은 편이라 식물이 향미 성분을 갖출 필요가 없었다.
14. ‘중독성’ 하면 흔히 마약 성분을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 중에도 중독성 강한 것이 꽤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계 3대 음료로 꼽히며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커피, 홍차, 코코아다. 이 중 커피는 꼭두서닛과의 커피나무 씨로 만들고 홍차는 동백과의 차나무 잎으로 만든다. 또 코코아는 벽오동과의 카카오 씨앗으로 만든다. 이 세 가지 음료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물질이 바로 카페인이다. 식물학자들은 카페인을 칼로이드라는 독성물질의 일종이자 해충과 동물로부터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기피물질로 추정한다. 이 카페인의 화학 구조는 니코틴이나 모르핀과 흡사해서 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을 한다.
15.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고추는 그 종류만 해도 150여 가지에 이르는데 매운맛도 제각각이다. 기피물질의 특성상 특히 기온이 높은 지대에서 자란 것이 매운맛이 더 강한 경향을 보인다. 고추는 가루나 소스 형태로 한국 요리, 멕시코 요리, 중국 요리 등에 주로 쓰인다. 이 중 고추장 형태로 만들어 고추를 섭취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16. 고추는 씨앗을 퍼뜨려줄 동반자로 포유류 등의 길짐승이 아닌 날짐승을 선택한 식물이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는 일반적인 동물에 비해 먼 거리를 이동하므로 더 넓고 빠르게 씨앗을 퍼뜨릴 수 있다. 또한 씨앗을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는 길짐승과 달리 식물 열매를 통째로 삼키는 데다 소화기관도 짧아 씨앗이 소화되지 않고 무사히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한마디로 고추는 땅에 사는 동물이 기피반응을 보이는 반면 새는 전혀 그렇지 않은 매운맛이라는 절묘한 방어기제를 선택한 셈이다.
17. 기원전 5000년 무렵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양파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무렵에는 이집트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재배하고 있었다. 이처럼 양파가 오랜 옛날부터 전 세계의 여러 대륙과 여러 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이유는 탁월한 효능과 함께 뛰어난 보존성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파는 건조한 환경에 보관해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고 보관이 쉬워 먼 곳까지 쉽게 운송할 수 있었다. 또 우리가 양파에서 먹는 부분은 알뿌리인데, 그 알뿌리를 땅에 심어 재배하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양의 양파를 수확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다 자란 생양파는 포도당량이 증가해 단맛이 강해진다. 실제로 눈을 감고 코를 막은 채 양파를 먹으면 사과와 양파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18. 양파는 영어로 ‘어니언(Onion)’이다. 이는 ‘진주’라는 뜻의 라틴어 ‘유니오(Unio)’에서 유래한 어휘다. 그러고 보면 껍질을 벗겨낸 양파는 마치 진주처럼 새하얗고 아름답다. 또 진주가 여러 층이 겹치면서 영롱한 구슬 모양을 이루듯 양파도 여러 층이 겹쳐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진주를 차용해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 양파의 불가사의한 효능을 보고 진주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떠올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19. 차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식물이다. 먼 옛날에는 차를 갖고 다니며 마시도록 고형으로 굳힌 병차(餠茶: 찻잎을 틀에 넣고 눌러서 둥근 떡 모양으로 납작하게 만든 것. 일명 떡차) 형태로 만들었다. 이 병차는 단차의 일종으로 필요할 때마다 차 덩어리를 부숴 덖어서 마셨다. 중국에서 차는 원래 불교 사원에서 즐겨 마시던 음료였다. 당나라 시대에는 선(禪) 사상이 유행했는데 사람들은 참선할 때 정신을 맑게 해주는 차를 약으로 마셨다. 이렇게 차를 약으로 마실 때는 덖기보다는 가루로 빻아 그대로 마셨다. 송나라 시대에 들어 차 문화는 찻잎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찻잎을 빻은 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차를 ‘말차’라고 부른다.
20. 중국 광둥성에서는 茶를 차[cha:]로 발음한다. 이 발음은 일본으로 건너가 차[cha]로 굳어졌다. 힌디어와 몽골어, 러시아어, 페르시아어, 터키어에서는 차를 차이[chai]로 발음한다. 광둥성에서 실크로드 등의 경로를 거쳐 이들 국가에 차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유럽과 중국 사이에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푸젠성 바닷길로 차를 운송했다. 푸젠성에서는 차를 ‘테[te]’로 불렀고 이후 유럽에서 ‘티[ti]’로 바뀌었다.
21. 녹차와 홍차는 같은 식물에서 나온다. 수확한 찻잎은 숙성하면 산화효소 작용으로 산화한다. 이는 사과를 잘랐을 때 단면의 색이 변하는 현상과 같다. 이처럼 숙성 과정을 거쳐 검붉게 물든 잎으로 홍차를 만든다. 반면 수확한 잎을 바로 가열해 산화효소가 활성화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면 변색하지 않고 푸른색을 유지한다. 이렇게 가열한 잎으로는 녹차를 만든다.
22. 영국에 반감이 생긴 미국인은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갑자기 입맛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 홍차 맛과 비슷하도록 연하게 볶은 원두로 내린 아메리칸 커피(American Coffee)를 즐겼다. 대개 아메리칸 커피라고 하면 연한 커피를 떠올리는데 실제로는 약하게 배전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미국은 커피 소비량에서 단연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커피 소비 대국이다. 스타벅스가 상징하듯 미국에서 활짝 꽃피운 커피문화는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식민지 미국이 영국에 맞서면서 촉발된 독립전쟁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23. 차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중국에서 재배하는 ‘중국종’이다. 이 차는 한랭지의 기후에 적응해 잎이 작게 진화했다. 중국에서 겨울 추위와 건조를 견디려면 잎을 작고 도톰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국종은 지금도 중국과 한국, 일본 같은 온대지역에서 재배한다. 다른 한 종은 인도에서 로버트 브루스가 발견한 차로 오늘날 ‘아삼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삼종은 인도처럼 무더운 기후에 적응해 잎이 큼직하다. 열대기후처럼 광합성에 유리한 환경에서는 작은 이파리보다 큼직한 이파리가 생산 효율이 높다. 또 열대 지방에는 잎을 먹는 해충이 많은데 잎이 크면 해충이 잎을 다 먹어치우기 어렵다는 점도 아삼종이 잎을 크게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한 주요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24. 카페인은 이름 그대로 Coffee (커피)에서 발견한 물질이다. 커피 원료인 커피나무는 꼭두서닛과 식물로 차와 마찬가지로 카페인을 지니고 있다. 세계 3대 음료이자 공통적으로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는 홍차·커피·코코아의 원료는 차나무, 커피나무, 카카오나무다. 진시황제가 그랬듯 사람들은 차를 맨 처음 우려마시기 시작한 이래로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차나무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라는 일종의 독성분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류의 마음과 영혼까지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카페인을 함유한 차는 마침내 인류 역사까지 크게 바꿔놓았다.
25. 설탕은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사탕수수는 현대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설탕의 원료인 식물이다. 사탕수수는 아담한 키를 자랑하는 다른 볏과 식물과 달리 3미터 가까이 성장하며 최대 6미터까지 자라는 키가 매우 큰 작물이다. 사탕수수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풍부한 광합성 과정을 거쳐 만든 당을 줄기에 저장한다. 사탕수수는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아열대 식물이다.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기술은 인도인이 개발했다. 기록에 따르면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도 고행을 마치면 설탕이 들어간 우유죽을 마셨다고 한다.
26. 결국 사탕수수를 생산과 동시에 정제하는 공장이 세워졌다. 공장이 문을 열자 쉴 새 없이 설탕을 생산하는 일만 남았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플랜테이션(Plantation)’이라 부른다. 플랜테이션에는 대량의 집중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런 터라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처음에 전쟁 포로를 사탕수수 농업 및 정제 과정에 투입했다. 그러다가 전쟁 포로로는 엄청난 일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점차 노예 노동력으로 대체했다.
27. 아랄해의 물이 줄어들면서 주위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파괴되었고 수많은 생물이 멸종했다. 아랄해를 중심으로 어업에 종사하던 지역 주민들 역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 마을이 속출했다. 물이 줄어들자 바닷물 염분 농도가 높아져서 아랄해는 그야말로 죽음의 호수로 변하고 말았다. 이 모든 처참한 상황이 목화라는 식물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물론 목화는 죄가 없다. 모든 것이 인간이 저지른 죄이고 재앙일 뿐.
28. 특이하게도 볏과 식물은 독 대신 유리의 원료인 ‘규소’라는 단단한 물질을 몸속에 축적해 자신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이는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규소는 독 이상으로 초식동물을 물리치는 데 효과가 큰 물질이기 때문이다. 둘째, 동물을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규소가 흙 속에 다량으로 녹아 있는데도 다른 식물들은 이것을 영양분으로 이용하지 않으므로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9. 벼와 밀, 옥수수 같은 볏과 식물은 인간에게 중요한 식량으로 사용된다. 볏과 식물의 여러 요소 중 인간이 식용으로 삼는 부위는 대개 종자 부분이다. 볏과 식물의 잎은 질겨서 동물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 물론 인간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 인간은 불을 쓸 줄 알기 때문에 잎이 아무리 질겨도 먹을거리가 그것밖에 없다면 어떤 식으로든 요리하거나 가공해서 먹으려 할 수도 있다. 아무튼 볏과 식물 잎은 너무 질겨서 인간에게나 다른 동물들에게나 식용으로 적당하지 않다. 더구나 어떻게 해서 꾸역꾸역 먹는다고 해도 제대로 된 영양분을 얻기도 어렵다. 볏과 식물은 포식자가 먹을 수 없도록 잎의 영양분을 아예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볏과 식물의 잎을 먹으려는 시도는 대부분 헛수고로 돌아간다.
30. 오늘날 인류의 주요 식량으로 이용되는 밀, 벼, 옥수수 같은 곡물들은 모두 볏과 식물의 씨앗이다. 그러나 인류가 볏과 식물의 씨앗들을 주요 식량으로 활용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절대 녹록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바로 ‘탈립성(脫粒性)’ 때문이다. 탈립성이란 식물이 자신의 몸에서 씨앗을 땅에 떨어뜨림으로써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고유의 성질을 말한다. 대다수 야생식물은 씨앗이 여물면 뿔뿔이 흩어지게 한다. 즉,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식물들은 대부분 탈립성을 지니고 있다. 볏과 식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씨앗이 여물대로 여물면 남김없이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식물의 번식에는 유리할지언정 인류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주지는 못했다.
31. 인류는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특성을 지닌 ‘비탈립성 일립계 밀’을 발견하고 지혜롭게 활용한 덕분에 농경의 길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 볏과 식물은 인류가 식량으로 삼기에 적합하다. 왜냐하면 그 씨앗이 지기 몸을 대부분 탄수화물 형태로 저장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2. 단백질은 식물의 몸을 만드는 기본적인 영양분이라 씨앗뿐 아니라 부모 식물에도 중요한 식량이다. 또한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지질은 그 지질을 만드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단백질과 지질이 풍부한 씨앗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 식물에 영양 면에서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의 초원에서 살아가는 볏과 식물은 영양 수급 면에서 여유가 없고 빠듯하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광합성으로 얻은 탄수화물을 그대로 씨앗에 저장한 뒤 싹을 틔울 때 그 탄수화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성장하는 소박하고도 현명한 생애주기를 설계했다.
33. 인류 초기 농민들은 왜 보리나 밀 등 다른 작물이 아닌 벼를 재배했을까? 무엇보다 벼가 보리나 밀 등 다른 작물에 비해 생산성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볍씨 한 톨로 700~1,000톨의 쌀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다른 작물과 비교해보면 경이로울 정도로 대단한 생산력이다. 구체적으로 생산량의 차이를 비교해보자. 15세기 유럽에서 밀을 뿌려 수확한 양은 종자 대비 3~5배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벼는 17세기 무렵 종자 대비 20~30배의 수확을 올렸을 정도로 생산성이 뛰어났다. 오늘날에도 벼는 종자 대비 120~140배의 수확량을 얻지만 밀은 20배 정도의 수확량밖에 얻지 못한다.
34. 대두는 중국이 원산지인 작물로 오랜 세월 아시아를 중심으로 재배가 이루어졌다. 물론 오늘날 대두는 중국과 아시아만이 아닌 전 세계 각지에서 재배하는 5대 주요 작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가 가장 많이 재배하는 작물은 옥수수다. 그리고 밀과 벼가 그 뒤를 잇는다. 이 세 가지 작물이 세계 3대 곡물로 꼽힌다. 감자는 금·은·동에는 못 들지만 당당히 4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다음 다섯 번째가 대두, 즉 콩이다. 놀랍게도 대두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브라질은 그다음 순위를 차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메리카 대륙이 전 세계 대두 생산량의 85퍼센트를 차지한다.
35. 탄수화물이 풍부한 벼와 단백질이 풍부한 대두의 조합은 절묘한 영양 균형을 이룬다. 다양한 영양소를 갖춘 안전 영양식으로 일컬어지는 쌀은 유일하게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부족하다. 이 라이신을 풍부하게 함유한 식품이 바로 대두다. 반대로 대두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메싸이오닌(Methionine)이 부족하지만 쌀은 메싸이오닌이 풍부한 식품이다. 그러므로 쌀과 대두를 적절히 조합해서 먹으면 모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36. 옥수수의 조상 격인 특정 야생식물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오늘날의 식물학자들도 옥수수 조상의 정체를 확실히 밝혀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예컨대 우리가 밥을 지어 먹는 쌀, 즉 벼에는 그 선조 격인 야생 벼가 있다. 밀에게는 직접적인 선조는 없으나 밀의 원형으로 알려진 야생 염소풀(학명: Aegilops Tauschii)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옥수수는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고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37.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인간은 자신이 옥수수를 마음대로 재배하고 이용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옥수수의 관점에서 볼 때 가소로운 생각일지도 모른다. 옥수수가 인간의 손을 빌려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니 어쩌면 오히려 인간이 옥수수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일 수도 있다. 식물은 자신의 분포 영역을 넓히고 널리 번식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종자를 퍼뜨린다.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식물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는지 알면 옥수수만큼 효과적으로 영역 확장에 성공한 식물도 드물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38. 사실 튤립의 원산지는 네덜란드가 아니며 유럽도 아니다. 그럼 어디일까? 중근동(아프리카 북부지역과 서아시아 — 옮긴이)이다. 그렇다면 튤립은 유럽에 어떤 경로로 전해졌을까? 아마도 야생 튤립이 십자군의 짐에 섞여 유럽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십자군 원정 이후 터키에서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고 이후 16세기 네덜란드 상인이 육성한 원예종이 등장했다.
39. 튤립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을까? 일설에 따르면 꽃 이름을 궁금해한 터키인 통역가가 “이 터번(Turban)처럼 생긴 꽃을 뭐라고 부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터번을 뜻하는 ‘투르반’이라는 단어가 꽃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튤립은 터번 같은 생김새 때문에 튈벤드(Tülbend)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것이 라틴어 Tulipa와 프랑스어 Tulipan을 거쳐 영어 Tulip으로 정착했다. 한마디로 ‘투르반’이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지금의 ‘튤립’이란 이름으로 굳어진 셈이다. 튤립은 터키의 국화다. 터키어로 튤립은 ‘랄레(Lâle)’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튤립이라는 이름은 착각에서 비롯된 엉뚱한 이름인 셈이다.
40. 네덜란드 사람들이 튤립 알뿌리를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하면서 비현실적인 거품경제가 형성되었다. 공교롭게도 최고가에 거래된 튤립의 이름이 ‘파산하다’, ‘무너진다’라는 의미의 ‘브로큰’이었다. 그 이름이 저주의 씨앗이 되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했다.
41. 인간은 참으로 묘한 존재다. 한두 번 쓰라린 경험을 하고 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지치지도 않는지 몇 번이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사실 지금도 튤립 거품 시대와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셈이다. 그 무렵 해양을 주름잡으며 황금시대를 누리던 네덜란드인은 부를 탕진하면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결국 세계 금융의 중심지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옮겨갔고 바야흐로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 한낱 식물에 지나지 않는 튤립 알뿌리가 세계사의 주역 자리를 갈아치우는 대단한 역할을 한 셈이었다.
42. 인류는 자신이 식물을 재배하고 지배하면서 지혜롭게 이용한다고 믿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통념에서 벗어나 관점을 달리해서 생각해보자. 식물과 연결된 인간의 수많은 선택과 행동이 실상은 새가 달콤한 열매에 열광하고 개미가 엘라이오솜을 먹기 위해 무거운 제비꽃 씨앗을 낑낑거리며 개미굴로 운반하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