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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하얼빈

by Jungi 2024. 6. 13.

하얼빈 책 표지

김훈 지음

 

독서 기간 : 24.6.1 ~ 6.13

 

나의 한 줄 리뷰 : 위인 안중근의 거사를 담담하면서도 입체적으로 풀어낸 훌륭한 소설.

 

하이라이트

1. 순종은 황위에 오른 뒤 국내 정치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받기로 협약했다.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협약에 도장을 찍었다. 순종은 황태자 이은을 일본 유학을 명분으로 인질로 삼으려는 이토의 강요에 저항하지 못했다.

2. 메이지는 말했다. —전하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쁘다. 사물을 바라볼 때 고국과 다른 점이 많을 것이다. 깊이 생각하라. 학업을 성취하기 바란다. 메이지는 장난감 말馬 한 개와 황실 문장이 새겨진 탁상시계를 선물로 주었다. 메이지는 말했다. —시간을 아껴라. 시간으로 세상을 잴 수 있다. 부디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져라. 새롭게 태어나라. 시종장이 시계를 받들어 이은 앞에 내려놓았다. 메이지는 또 말했다. —공부할 때, 시계를 책상 앞에 놓아라. 짐이 내리는 시간이다.

3. 왕권의 지근거리에서 세습되는 복락을 누린 자들일수록 왕조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갈 때는 새롭게 다가오는 권력에 빌붙으려 한다는 사실을 이토는 점차 알게 되었다. 도장의 힘은 거기서 발생하고 있었다. 도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살육을 피할 수 있고, 조선에서 밀려나는 서양 여러 나라들의 간섭을 막을 수 있고, 사후 처리가 원만할 것이었다.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4. 1905년 12월에 조선 청년 안중근은 상해에서 돌아왔다. 그해 안중근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상해에서, 뜻있고 힘있는 한인들을 규합해서 국권회복의 실마리를 만들려던 안중근의 의도는 좌절되었다. 상해에 돈을 가진 자들은 더러 있었으나 뜻을 가진 자는 없었다.

5. 안태훈은 열여섯 살에 혼인해서 열여덟 살에 안중근을 보았다. 안중근이 소년을 벗어나자 안태훈은 열일곱 살 아래인 아들 안중근을 사내로서 대해주었다. 안태훈은 집안에 닥쳐오는 위해를 아들과 의논했고 그 전면에 아들을 세웠다. 안태훈은 아들과 함께 기울어가는 국운을 개탄하고 난세를 성토했다. 안태훈의 무덤은 눈에 덮여 있었다. 산의 언저리가 모두 눈에 덮여서 봉분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하얬다. 안중근은 뒤늦게 절하면서 통곡했다. 안태훈의 죽음에서 안중근은 친숙했던 한 세상이 끝났으며, 적의에 찬 시간 앞에 홀로 서 있음을 느꼈다.

6. 빌렘이 물었다. —다시 대륙으로 나가려느냐? —…… 안중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빌렘은 대답 없는 뜻을 짐작했다. 종탑에서 만종晩鐘이 울렸다. 부활의 은총이여, 신앙의 신비여…… 빌렘이 겟세마네의 예수 그림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저녁기도를 올렸다. 안중근이 그 뒤에서 무릎 꿇고 합장했다.

7. 잉걸불이 할딱거려서 빌렘의 얼굴은 달아올랐고 희고 검은 수염 속에 벌건 불빛이 스몄다. 연고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안중근은 그 연고 없고 가본 적 없는 이국 항구의 거리를 떠올렸다. —거기는 왜 가느냐? 라고 빌렘은 물었는데, 그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빌렘은 동학당과 싸우던 소년 안중근의 생명의 혈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라면서 그 혈기는 순치되어 몸속 깊이 잠겼는데, 가끔씩 그의 눈빛에 어른거렸다. 안중근은 빌렘의 시선을 피해서 화롯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거기서…… 동포들과 더불어…… 회복을 도모하려…… 안중근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안중근은 신부의 뜻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지 않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안중근의 마음속에 펼쳐지는 거친 대륙을 빌렘은 짐작했다.

8. 이토를 어떻게 해서든지 눌러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 마음에 자리잡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았으나 분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골병처럼 몸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멀리서 다가와서 넓게 퍼진 골병처럼 그것은 몸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집어서 드러내 보일 수는 없었다. 도주막의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밤에, 안중근은 이토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9. 안중근은 출병한 지 한 달 반 만에 두만강을 건너서 러시아령 연추로 돌아왔다. 산속에서 흩어진 대원들은 한두 명씩 연추로 돌아왔고, 또는 돌아오지 않았다. 작전의 성과는 없었다. 의병대원들은 저마다의 열혈과 충정으로 자원입대한 사람들이었지만 의기義氣가 치열할수록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군율로 통제하기 어려웠다. 반도의 면면촌촌에서 죽음을 잇대면서 무너지고 또 일어서는 의병 부대들을 안중근은 생각했다. 계통이 없고 대열이 없는 복받침이었다. 한없는 죽음이었고 한이 없을 죽음이었지만, 국권회복은 죽음을 잇대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었다. 산속에서 붙잡은 일본군 포로들을 그때 죽였어야 옳았던가를 안중근은 스스로 물었다. 안중근은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10. 열차는 저녁 아홉시 십오분에 하얼빈에 도착했다. 철도 앞쪽 열차 정지선에서 빨간색 파란색 신호등이 명멸했다. 남루한 차림의 사내들이 짐 보따리를 지고 열차에서 내렸다. 마중나온 사람들이 도착한 사람들을 끌어안고 울었다. 아이고, 하고 우는 여자는 조선 여자일 것이었다. 플랫폼을 빠져나오면서 안중근은 중첩된 철도들을 바라보았다. 이토가 하얼빈까지 타고 오는 철도와 김아려와 아이들이 타고 오는 철도가 겹쳐 있었다. 어느 열차가 먼저 도착할 것인지 안중근은 알 수 없었다.

11. 안정근은 안중근의 처자를 정대호에게 인계하고 돌아갔다. 정대호는 일행을 아홉 명으로 계산하고 있었으나 안중근의 큰딸 현생이 빠져서 여덟 명이 되었다. 신의주로 가는 막차가 끊겼으므로, 정대호는 22일 밤을 평양역 앞 여관에서 보냈다. 지금부터 김아려는 정대호의 친누나이고 김아려의 두 아들은 정대호의 조카인 것으로 알고, 여행중의 모든 문서에 그렇게 쓰라고 정대호는 김아려에게 일렀다. 같은 혈족이면 청나라 세관의 까다로운 검색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청나라 세관 서기인 정대호의 설명이었다. 정대호 일행은 23일 아침 평양을 떠나서 압록강을 건넜다. 23일 저녁, 일행은 압록강 기슭 단동의 일본인 여관에 투숙했다. 김아려는 숙박부에 정대호와의 관계를 친누나라고 써넣었다. 정대호 일행은 초하구에서 일박하고, 봉천에서 일박하고, 장춘에서 일박했다. 하얼빈으로 가는 열차는 27일 아침 장춘에서 출발했다.

12. 안중근은 아침 아홉시의 하얼빈역의 구도를 생각했다. 구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현장에 부딪치기 전에는 현장의 구도를 알 수 없었다. 몇 발을 쏠 수 있을까. 1탄을 쏘면 총성에 역 구내가 술렁거리고, 2탄을 쏘면 경비병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고, 3탄을 쏘면 대응사격을 하거나 육탄으로 제압할 것이다. 이때 조준선을 유지하면서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의 평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사격 위치를 이동해서 다시 조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번 쏜 자리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일을 끝내야 하는데, 몇 발을 쏠 수 있을까. 다섯 발 이상은 쏘기 어렵지만, 서너 발이면 충분할 것이었다. 1탄 이후에 벌어지는 소란 속에서 고요한 평정을 유지하고 조준선을 찾아가야 한다…… 반동을 몸으로 받아가면서 몸은 다시 평온해질 것이다. 평온해진 내 몸을 총알에 실어서 이토의 몸속으로 박아넣자…… 안중근은 벽의 한 점을 겨냥하면서 빈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고요해서, 손가락이 손가락의 움직임을 알지 못했다. 25일 밤에 안중근은 깊이 잠들었다.

13. 안중근은 러시아 군인들 틈새로 조준선을 열었다. 이토의 주변에서 키 큰 러시아인들이 서성거려서 표적은 가려졌다. 러시아인과 일본인들 틈에 섞여서 이토는 이동하고 있었다. 이토는 가물거렸다. 안중근의 귀에는 더이상 주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러시아인들 틈새로 이토가 보였다. 이토는 조준선 위에 올라와 있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하얼빈역은 적막했다. 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토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 안중근은 다시 조준했다. 안중근은 고요히 집중했다. 손바닥에 총의 반동이 가득찰 때 안중근은 총알이 총구를 떠난 것을 알았다. 이토 주변에 서 있던 일본인 세 명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몸으로 덮쳤다. 안중근은 외쳤다. —코레아 후라 안중근은 쓰러지면서 총을 떨어뜨렸다. 탄창 안에 쏘지 못한 한 발이 남아 있었다.

14. 이토는 숨을 몰아쉬었다. 비서관이 범인은 조선인이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보고했다. 이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바보 같은 놈 이토는 곧 죽었다.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15. 미조부치는 밧줄에 묶인 안중근의 사진을 김아려에게 보여주었다.   —봐라. 남편이 이처럼 체포되었다. 남편이 아닌가? —내 남편은 죽었다. 남편은 없다.   —그대 남편은 안응칠이 틀림없다. 어떤가? —나는 모른다.   김아려의 마음속에서 남편은 죽었다. 죽음은 바뀔 수 없었다. 미조부치는 김아려가 안중근의 아내라는 심증을 굳히고 신문을 끝냈다.

16. 안중근은 ‘후라’가 ‘만세’라는 뜻으로 세계 공통으로 쓰는 말이라고 진술했다. 미조부치는 위태로운 함정을 느꼈다. 안중근은 ‘코레아’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토를 쏘았고 세계 공통어 ‘후라’로 만세를 외쳤다. 미조부치는 ‘후라’가 어느 나라 말인지 알지 못했지만, 안중근이 범행 전에 이미 ‘후라’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었다. 안중근의 정치성은 이토와 코레아와 세계 공통어 ‘후라’를 그의 한 몸의 리듬으로 연결시키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을 거쳐서 대련에 닿는 철도를 따라서 전개되고 있었다. 세계 공통어 ‘후라’는 말해지지 않은 많은 말을 내장하고 있었다. 미조부치는 ‘후라’의 배후를 더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안중근의 진술은 짧은 한마디로 신문의 포위망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었다. 미조부치는 빠져나가는 안중근의 말을 다시 가두었다. —그대가 말하는 동양 평화란 어떤 의미인가? —동양의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는 것이다. —그중 한 나라만이라도 자주독립하지 못하면 동양 평화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17. ……여기까지 오기는 왔구나. 여기서부터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세상을 향해서 말을 해야 하는구나. 여기서부터 다시 가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여기서부터 사형장까지…… 말을 하면서…… 안중근은 몸속에서 버둥거리는 말들을 느꼈다. 말들은 탄창 속으로 들어가서 발사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가 총 밖으로 나와서 긴 대열을 이루며 출렁거렸다. 말은 총을 끌고 가려 했고, 총은 말을 뿌리치려 했는데, 안중근은 마음속에서 말과 총이 끌어안고 우는 환영을 보았다. 법정에서 사형장까지는 멀지 않았으나 말을 거느리고 거기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몸속에서 버둥거리는 말이 하얼빈역에서 쏜 자동권총처럼 방아쇠를 당기는 대로 쏟아져나온다면 거기까지 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어렵거나 어렵지 않거나 거기까지 가는 길이 멀지는 않다는 것을 안중근은 법정에 들어서면서 확실히 알았다. 안중근은 그 길에 대해서 죽은 이토에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우덕순에게, 그리고 아내 김아려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나 말을 걸 수가 없었다.

18. 면회 시간이 끝났고, 형제는 헤어졌다. 안중근은 감방으로 돌아와서 남은 할일을 적은 메모를 들여다보았다. 일은 많이 남아 있었으나 집행 날짜를 몰라서 전체 일정을 잡을 수는 없었고 우선 하나씩 해나가기로 했다. 안중근은 먹을 갈아서 옥리에게 부탁받은 글씨를 썼다. 弱肉强食 風塵時代 약육강식 풍진시대

19. 안중근과 빌렘의 접견을 허락함으로써 일본은 얻을 것이 크지만 안중근이 명분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부를 보낸다면 교회의 입장이 거북해진다는 것을 뮈텔은 빌렘에게 설명해줄 수 없었다. 고위직에게는 아랫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는 고민이 늘 있었다. 뮈텔은 빌렘에게 보내는 답장을 속달우편으로 부쳤다. ‘출장 불가’를 알리는 뮈텔의 답장을 받은 다음날 빌렘은 여순으로 떠났다. 여순으로 가는 기선은 닷새에 한 번씩 진남포에서 출항했다. 운항 날짜가 맞았다. 진남포 부두에서 빌렘은 명동대성당의 뮈텔에게 전보를 쳤다.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저는 여순으로 갑니다. 빌렘

20. 안중근과 빌렘은 대면하는 인사도 없이 자리에 마주앉았다. 안공근이 옆자리에 앉았다. 빌렘은 자리에 앉아서 성호를 그었다. 안중근이 먼저 안공근에게 말했다. —오늘 네가 잘 왔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힐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안중근의 목소리는 글을 읽듯이 무덤덤했다.

21. 빌렘이 마지막으로 다녀간 뒤 나흘 만에 안중근은 『안응칠 역사』를 탈고했다. 안중근의 글은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 감옥으로 면회 온 빌렘에게 고해성사를 받는 대목에서 끝났다. 탈고하기 나흘 전까지의 일들을 적었다. 안중근은 글의 마지막에   3월 15일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은 쓰기를 마친다. 라고 덧붙였다. 탈고한 지 열하루 뒤에 안중근은 집행되었다.

22. 27일 아침에 빌렘이 신자들을 소집했다. 안중근의 문중 사람들과 마을의 신자들이 청계동성당에 모였다. 빌렘은 여순감옥에서 안중근을 만나 고해성사를 베푼 일을 마을 신자들에게 말했다. 빌렘은 ‘나의 시체를 하얼빈에 묻으라’는 안중근의 유언을 신자들에게 전했다. 안중근의 시체는 하얼빈으로 가지 못하고 여순감옥의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빌렘은 전했다. 빌렘은 신자들과 함께 기도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망자에게 평안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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