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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법정에 선 수학

by Jungi 2024. 3. 25.

법정에 선 수학 책 표지

레일라 슈냅스, 코랄리 콜메즈 지음, 김일선 옮김

 

독서 기간 : 24.3.21 ~ 3.25

 

나의 한 줄 리뷰 : 법정 사례에담긴 수학의 오류를 다루었으나, 확률과 통계만 다루어 기대와 달리 아쉬운 책.

 

하이라이트

1. 누구나 거짓말을 눈치 챌 수 있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숫자가 타당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아니면 안 좋은 의도를 갖고 제시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즉 이론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2. 폰지는 보스턴의 스쿨가에 환전 회사를 세웠다. 등록된 사업 분야는 유럽에서 국제반신권을 수입해서 미국 우표로 바꿔 주는 것이었다. 계획에는 아무런 허점도 없어 보였다. 유일한 문제는 자금이었으므로 폰지는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진정한 능력,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깨닫게 된다. 투자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회사에 투자하도록 설득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분명한 사업 계획, 확실한 이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 앞서 J. P. 모건의 통찰력 가득한 지적을 상기하자 ―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느끼게 하는 성품이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못 믿을 인간이었던 찰스 폰지에게는 역설적으로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사업 계획은 확실했을 뿐 아니라 합법적이었다. 그가 첫 투자자들에게 내건 조건은 45일 만에 50퍼센트, 혹은 90일에 100퍼센트의 수익을 돌려주겠다는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90일 마다 투자금을 두 배로 불려 주겠다고 한 것이다. 최초로 투자한 사람들이 약속대로 이윤을 배당받자, 폰지의 현관 벨은 쉴 틈이 없이 울려댔다.

3. 폰지는 8월 12일 목요일에 체포되었다. 그는 부인에게 전화해서 감사관들과 함께 장부를 조사하느라 밤을 새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부인인 로즈는 그날 초대했던 손님들을 웃는 모습으로 혼자 맞이했다. 그날 자신의 남편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그곳에서 그녀 혼자뿐이었다. 며칠 뒤 투자자들이 돈이 더 들어올 곳이 없다는 진실을 깨달을 때까지 예금 인출 사태는 계속되었다. 폰지의 모든 자산은 압류되었고, 채권자들에게 줄 돈을 일부라도 마련하기 위해 경매에 붙여졌다. 조지프 대니얼스가 갈취한 4만 달러도 함께 압류되어 보상에 보태졌다. 다단계 사기 사건이 항상 그렇듯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4. 수학과의 일부 교수들은 제니가 1986년에 정교수 승진 심사에서 탈락했던 이유는 오로지 학문적 측면만 고려한 정당한 평가였다고 주장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당시 그녀는 이미 충분한 업적을 내놓은 상태였으므로 탈락에는 무언가 다른 요소가 작용했으리라고 예상했다. 이 사례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개별 사안만을 보아서는 정교수 승진 심사 탈락 같은 사건의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기는 어렵고 설령 성차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5.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을 잘 다루던 그는 소아과 과장과 함께 몇 가지 계산을 직접 해보았다. 간호사들이 제출한 모든 자료를 통합한 뒤, 루시아가 심폐소생술에 그 정도로 자주 관련될 확률을 계산해 본 것이다. 결과를 확인한 스미츠 원장은 동요했다. 계산이 아주 정확하진 않았지만 간호사들의 눈에 비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보기에도 루시아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례에 관련되어 있었다. 암버르가 사망한 다음날인 9월 5일 오전, 루시아가 관여한 사망 환자 다섯 명의 사인도 모두 ‘비자연사’로 변경되었다. 사망 당시에는 모두 자연사로 처리된 사례였다. 가능한 많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스미츠 원장은 자신이 관리하던 다른 병원과 루시아가 이전에 근무했던 레이엔뷔르흐 병원에 그녀가 현장에 있었던 사망 환자의 관련 기록을 요청했다. 목록이 입수되자 그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사태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던 의사들은 스미츠에게 이 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스미츠는 경찰을 불렀고, 루시아 더베르크는 13건의 살인과 4건의 살인 미수 혐의를 받게 되었다.

6. 살인으로 분류된 사망 사례는 루시아가 당시 병원에 있었는가의 여부에 따라 계속 변경되고 있었다. 이미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였다. 누가 살해했느냐가 아니라, 과연 살해된 것이 맞는지가 문제였다. 핵심은 루시아가 근무 중이 아닐 때 일어난 사망은 자연사로 간주되었지만, 그녀가 근무 중일 때 일어난 사망은 살인으로 간주되었다는 데 있다. 즉 루시아의 존재 여부가 살인과 자연사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나 다름없었다.

7. 브루마 위원회는 추가적인 조사를 제안했고, 2006년 10월에 3인의 위원이 임명되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면밀히 검토할 것을 요구받았다.   • 통계적 증거에 오류가 없는지 • 디곡신에 의한 사망 여부가 확실히 가려졌는지 • 사망 원인이 불확실한 사례들이 정말로 루시아의 주도하에 일어난 일인지, 그녀가 없었다는 이유로 다른 사례들이 제외된 것은 아닌지   2007년 10월, 10개월간의 작업 끝에 작성자 중 한 명의 이름을 딴 흐림베르헌Grimbergen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보고서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 데 대한 사과가 포함되어 있다. 세 명의 작성자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루시아가 수감 중에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8.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으레 그렇듯 진행은 더뎠지만 한 단계씩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6월 경 사건을 공식적으로 다시 심리하기 시작했다. 10월에는 암버르 이외의 다른 주요 사례인 아흐마트와 갑자기 예기치 못한 심폐소생술을 받았던 아흐라프의 사망에 대해서 전면적인 의학적 재조사를 명령했다. 14개월이 지난 2009년 12월, 새롭게 증인으로 채택된 의료 전문가들은 법정에서 이들의 사망이 자연사라고 증언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2010년 3월 17일에 내려질 최종 판결을 앞두고 루시아는 마지막 심문을 받았다. 공판일이 가까워지자 검찰조차도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난다. 2019년 4월 14일,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를 통해 법원은 네덜란드의 사법 체계의 권위는 물론이고 그저 간호사로 살기를 바라며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동안에도 소신을 잃지 않았던 평범한 개인의 삶을 무너뜨렸던 실수를 바로잡았다.

9. 11월 1일 저녁, 어맨다는 매니저로부터 가게가 한가하므로 저녁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르시크Le Chic는 페루자 중심부에 있는 트렌디 펍으로, 콩고 뮤지션 패트릭 루뭄바Patrick Lumumba가 경영하는 곳이었다. 어맨다는 그곳에서 매주 며칠씩 저녁 시간에 일을 했다. 후일 재판에서 그녀는 그날 출근할 필요가 없게 되어 라파엘의 집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은 후 마리화나를 피우고 성관계를 가진 뒤 잠을 잤다고 배심원 앞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같은 날 저녁, 메러디스가 어맨다와 함께 살고 있던 작은 언덕 위의 집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되었다. 부검 결과 한 명 이상이 그녀를 함께 공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목에 남은 상처는 서로 다른 종류의 칼로 두 방향에서 ― 하나는 오른쪽, 또 하나는 왼쪽에서 ― 가해진 것이었다. 침대에 남은 혈흔은 칼이 잠시 침대 위에 놓였던 곳을 알려 주고 있었다. 또한 메러디스의 몸에 남은 수많은 멍과 타박상은 그녀가 묶여서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구타당했으며, 살해당하기 전에 목이 졸렸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10. 판결문에서 헬만 판사는 특정한 값의 신뢰도를 가진 실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결과가 사실과 일치할 확률이 X퍼센트인 실험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같은 실험을 다시 독립적으로 시행해도 실험 결과가 사실과 일치할 확률은 여전히 X퍼센트다. 헬만이 지적하는 부분은, 실험을 독립적으로 두 번 시행한다고 해서 이 확률이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신뢰도가 낮은) 두 샘플의 검사 결과를 합쳐도 신뢰도가 높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판결문의 마지막 문장은 같은 실험을 별도로 두 번 시행하여 얻는 확률적 결과에 대한 완벽한 오해를 보여 주고 있다.

11. 분명한 점은, 과학적으로 잘못된 논리에 근거하여 다시 수행할 수 있었던 칼날의 DNA 검사를 거부함으로써 헬만 판사는 진실을 밝혀낼 중요한 기회를 무산시켰다는 사실이다.

12. 1월 11일, 경찰은 목격자들로 하여금 로버트 베이커를 포함한 용의자들을 확인하도록 했다. 기록에는 어떤 목격자들이 참가했는지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들 중 헬렌 니고도프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수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고 베이커가 다이애나 살해범으로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녀는 용의자 중에서 로버트 베이커를 지목하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그는 1978년에 사망했고, 다이애나 사건은 30년 이상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13. 분명한 것은 그가 받을 판결이 어떤 것이건 그가 무죄일 확률 이외의 다른 확률에 근거해서 판결이 내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재판에서 수학이 활용된다면 올바르게 쓰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재판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셈 밖에는 되지 않는다.

14. 이 답변은 메도가 유아 돌연사를 확률 문제로 바라본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가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에서는 유전적 요인처럼 특정 가정에서의 유아 돌연사 발생 확률을 높이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분명히 적시했음에도 말이다. 샐리의 경우, 유아 돌연사 발생 확률을 계산할 때 수백만 가정에서의 관찰 결과를 토대로 얻은 8,543분의 1이라는 값을 적용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한 집에서 두 건의 유아 돌연사가 일어날 확률을 단순히 이 값을 제곱하여 구하는 계산은 유아 돌연사가 순전히 무작위적으로 일어난다는 완전히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만약 유아 돌연사가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이를 추적해서 확률을 구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경우 이 두 건의 사망은 서로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 위의 메도의 계산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은 두 확률을 곱하는 수학적 오류의 예다.

15. 또한 유아 돌연사라는 용어는 하나의 독립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원인이 불분명한 유아 사망사고를 통칭하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지만 유아 돌연사의 경우에는 단지 의사들이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을 뿐이다. 가족의 유전적 특성이나, 면밀한 부검 등을 통해서 이유가 밝혀진다고 해도 시간이 꽤 흐른 뒤인 경우도 많다. 일단 사망 원인이 밝혀지면 아이는 유아 돌연사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지 않으므로, 해당 사례는 유아 돌연사와 관련된 통계에서 제외된다. 결국 유아 돌연사는 확실하게 일어났거나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사건이 아니며, 무작위적으로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각각의 유아 돌연사는 수학적 의미에서 서로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클라크 부부에게는 안타깝게도, 재판부와 배심원은 메도가 제시한 확률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16. 비슷한 시기인 2001년 10월 23일, 메도가 주장했던 수학적 가정도 다시 검토대에 올랐다. 영국 통계 학회는 대법원장에게 메도의 오류를 지적하고 그 심각성을 강하게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의 접근 방식은 통계학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의 주장이 타당하려면 각각의 유아 돌연사 증후군이 개별 가정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나야 하는데, 이는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이런 경험적 타당성이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그의 가정이 성립하지 않을 매우 강력한 조건 또한 존재합니다. 유아 돌연사 증후군이 발생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 번 유아 돌연사 증후군이 발생한 가정에서는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내용은 모두 형사 범죄 재심 위원회에 제출되었고, 2003년 1월 29일 샐리의 판결은 번복되었다. 드디어 석방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3년 이상을 복역한 상태였고, 가족과 함께하게 된 기쁨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17. 수학, 특히 확률 이론을 잘못 적용해서 얻은 결과가 배심원단에게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치는 바람에 잘못 내려졌던 판결은 뒤집어졌다. 맬컴은 무죄로 석방되었고, 이미 3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와 있던 부인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부부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사건은 그저 수많은 강도 사건 중의 하나로 묻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사용된 수학적 접근이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 사건은 재판의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로렌스 트라이브는 미국 법조계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2000년 대통령 선거 이후 앨 고어와 조지 부시의 당락을 가르는 대법원 재판에서 앨 고어의 변호인을 맡았고, 여러 유명 인사들을 ― 트라이브가 후일 각료로 참여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서 ― 가르쳤는데, 아마도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1970년대에 법정에서 수학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여러 논문을 발표한 점일 것이다. 미국의 형법 체계에서 트라이브의 논문이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그 결과 법정에서 수학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를 연구하던 관련 분야에서 수십 년 간 수학이 사용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과학이 더욱 발달하여 법정에서 DNA 분석이 흔히 사용되고 있으며, 이런 분야에서 수학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시 법정에서 수학을 활발하게 활용할 필요가 시급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18. 조 앨비 스니드 부부는 실버시티에서 유명 인사였다. 부부는 지역 일간지인 《실버시티 데일리 프레스Silver City Daily Press》의 판매를 맡고 있었다. 결혼한 두 딸은 따로 살고 있었고, 아들은 조뿐이었다. 지역 신문에 “평균적인 미국 청년”이라고 묘사되었듯, 그가 실버시티에 살던 시기에 폭력적 경향을 보였거나 큰 사건을 일으킬 만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살해당한 피해자를 처음 발견한 것이 그였으므로 경찰은 그를 용의선상에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나고 처음 며칠 동안은 경찰이 그를 그다지 진지하게 용의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마도 그가 살인범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안이한 태도가 사법상의 심각한 실수 ― 연이은 실수 중 첫 번째 ― 로 이어졌다.

19. 요약하자면 비슷한 외모를 지닌 두 명의 로버트 크로셋이 같은 사람일 확률을 계산하는 일은 스니드의 재판에서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일이었다. 도출된 결과는 그럴 듯하게 보였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2,400억분의 1이라는 숫자는 배심원단으로 하여금 스니드가 크로셋이라고 확신하게 만들었고, 이처럼 잘못된 방법으로 도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피고는 살인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 측의 논리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혼란만 가져왔다는 사실은 항소심에서 드러났다. 1심 판결이 확정되고 1년이 조금 지난 1966년 5월 31일, 뉴멕시코주 대법원은 판결을 취소하고 스니드의 재판을 다시 열라는 결정을 내렸다. 판결문에는 소프를 증인으로 내세워 도출했던 수학적 논리에 근거한 판결에 문제가 있으며, 정당한 절차를 거쳤는지 의심스럽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소프는] 전화번호부에 로버트 크로셋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도, 어떻게 이를 근거로 양의 값을 갖는 확률을 적용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전화번호부에 그 이름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전화번호부에 근거해서 특정 값을 확률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혹은 0을 사용했어야 하지 않은가?

20. 베르티옹이 펼친 논리의 허점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지만, 1904년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e, 폴 아펠Paul Appell, 가스통 다부르Gaston Darboux, 즉 당대 프랑스의 유명 수학자 세 명이 이를 지적할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은 베르티옹이 한 개의 키, 예를 들어 붉은색 키만을 사용했을 때는 기대했던 것과 비슷한 수의 글자가 일치(같은 글자가 같은 글자 위에 위치)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베르티옹은 이후 수학자들이 검증한 것처럼 키 하나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너무 많은 글자들이 키와 겹치지 않았고, 심지어는 아예 글자의 위치가 키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모의 모든 글자들이 키와 겹치게 하려면 그가 시도했던 방법이 유일했다. 붉은색과 초록색의 두 개의 같은 키가 서로 살짝 위치가 밀려 있어야 했다. 그러나 베르티옹은 두 개의 키를 이용하면 어떤 글자가 같은 글자 위에 우연히 겹칠 확률이 두 배로 높아진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21. 육군은 다시 한번 이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서야 이길 수 있었다. 특히 저명한 작가인 에밀 졸라가 갑자기 싸움 한복판에 뛰어들어 아무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편에 선 것이 뼈아팠다.   나는 고발한다…!   에스테라지가 풀려난 다음 날 신문의 헤드라인이었다. 기사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으로, 사건을 뒤에서 조작한 육군의 비위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기술하고 있었으며, 진정 위대한 작가에게만 가능한 신랄하고 정확한 필치로 대중을 분노케 하는 힘을 보여 주었다.

22. 그 이후로도 그는 7년을 더 싸워야 했다. 그 사이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증거로 사용된 문서들이 위조되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또한 프랑스에서 가장 저명한 수학자 세 명 ― 앙리 푸앵카레, 가스통 다부르, 폴 아펠 ― 이 베르티옹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베르티옹의 주장이 “확률 계산 법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 과학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1906년 7월 12일, 프랑스 대법원은 렌에서의 판결을 취소하고 드레퓌스를 육군에 복귀시킨다는 내용의 선언을 발표한다. 1906년 7월 21일, 드레퓌스는 1894년에 고통스럽게 전역당했던 장소인 군사학교에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그 유명한 베르됭 전투를 비롯해 여러 치열한 전투에 참전해서 조국을 위해 싸웠다. 전쟁 말기에 퇴역한 뒤에는 자신을 둘러싼 가혹한 역사를 기록하며 가족과 함께 하며 여생을 보냈다. 드레퓌스 사건을 꾸며낸 장성과 장교 누구도 진실을 고백하지 않았지만 침묵도 역사의 흐름을 막지 못했고, 그들이 저지른 일은 결국 만천하에 드러났다. 에스테라지는 가명을 쓰며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 하트퍼드셔주 하르펀던Harpenden에 있는 교회 앞에는 지금도 그의 무덤이 있다. 누구의 묘인지 알아볼 수 없는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사랑하는 부알레몽Voilemont 백작을 기리며 그는 밤의 그림자보다도 높이 날았도다

23. 그렇다면 수학이 재판에 사용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일지 의문을 품어 봄 직하다. 수학이 정말로 범죄의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수학의 가장 두드러지는 단점은,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수학자들조차도 수학을 실생활에 적용해 본 경험이 없다면 수학을 오해하고 오용할 여지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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